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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1. 20:39 리뷰/음악 & 미술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그러나 그리움 속에서 절실한 인간적인 접촉이 상실되어 잊혀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그것은 정신적 외상으로 남게된다. 그리고 심각한 정신적 외상은 정신병을 일으킨다. 그러한 과정을 겪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들이 많은 것 같다. 고은씨의 이중섭 평전을 읽기 전부터 이중섭이라는 화가를 너무나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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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언급되는 이중섭의 그림은 '소'와 '까마귀'이다. 종로에 가서 이중섭의 그림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덥섭 집어와서는 책상 옆에다 두었다. 역시 그 조그만 화집의 4장 중 2장은 '소'이고 한장은 '달과 까마귀' 그리고 마지막 한장이 '복숭아와 아이들'이다. 가족을 일본으로 보내야 했던 이중섭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화폭에 담은 그림이 그의 옆서 그림에 남아있다. 이중섭의 소를 보는 것보다 종이 위에 그려지거나 은박지 위에 그려진 그의 가족관련 그림을 보면 너무나 천진한 그의 모습과 가족의 아름답고 사랑스런 모습이 드러난다. 이런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도 저 그림 속의 사람처럼 천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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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는 엽서의 그림은 부인과 아이를 그리고 있는 이중섭 자신을 그린 그림이다. 과연 어느 화가가 이렇듯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가족을 담아낼 수 있을 지......

파자마 차림의 중섭 자신이 가족을 그리고 있는 얼굴은 무척이나 행복하다. 그러나 사실 이 엽서를 보내야 하는 이중섭은 이미 많은 사람으로 부터 소외되어 어려운 삶을 살고 있을 때였다. 그러한 이중섭이 살아가도록 도와준 것이 바로 그의 가족이었고, 그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절실히 그리워해서 한편으로 너무나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슬프고 애절한 이중적인 모습이 바로 이중섭의 모습이 아닐까한다. 이중섭의 인물들이 과장되어있다는 표현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그가 그린 인물들의 모습들은 과장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가장 적절히 꼬집어서 그려내고 있다는데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른다. 아래의 그림은 이중섭의 바닷가의 아이들이라는 그림이다.

무언가를 열심히하고 있는 표정, 이제는 만족하여 누워있는 아이, 그리고 즐거워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 그 어느 것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아이다움의 명확한 표현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가족 속에 함께하고 싶어하는 이중섭이 너무나 아름답지만 가슴아프게 한다. 함께 있지 못함으로 인해 항상 그림 속에는 그 가족과 함께 있는 자신을 그의 머리 속에서 그리고, 그의 붓을 통해 화폭으로 옮기는 순간. 그 순간들을 상상해 보면 그의 모습이 안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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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단순함이 가지는 순수함. 가장 완벽한 원 속의 눈, 코, 입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완벽한 순진 무구의 극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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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쉽게 잃어버리는 순수함. 그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사치를 항상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중광이 천상병씨인지, 이외수씨였는지 두분다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자를 그린 그림이 있다. 함께 보시면 즐거울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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