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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0. 23. 04:36 리뷰/뉴스리뷰

개인적으로 나는 손석희씨와 아무런 연관도 없다.  그것이 당연하다.  단지 여의도에서 근무를 하였던 관계로 그를 가끔 점심 시간에 보기도 했다.  그 여의도에서 직장이 멀어진 이래로는 지금까지 그를 다시 본 일이 없다.  그의 100분 토론도 자주 보지는 않았다.  아이 저런 놈들이 토론은 무슨 토론이야를 외치면서 채널을 돌리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그것 마저도 더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종종 아이 그래도 사회자가 저러면 안되지를 연발하면서 만족하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인상비평과 오늘날의 100분 토론을 만들어 낸 요인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면 그가 던진 메시지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그가 MBC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MBC 라디오 방송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그램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이라도 유지하려고 제스쳐를 보이는 것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나이브한 생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그의 심경을 밝혔을 때 더 정확해 지기는 하겠지만, 나는 이것을 전술적인 후퇴라고 말하고 싶다.  오전에 쓴소리 단소리를 하면서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청취자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워서 성공을 한 것인지 성공을 해서 아름다운 것인지 혹은 살아남아서 승리한 것인지 승리해서 살아남은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닫혀만 가는 언로에 조그만 틈이라도 남겨놓기 위해서는 그가 살아남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름아닌 어떠한 정치적 당파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이다.  정치적인 당파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이야기는 진실일 수 있다.  나는 어떠한 당파도 싫어한다.  진보와 노동이라는 단어를 앞세워서 자신들의 위치를 꽤나 앞선 것처럼 포장을 하는 정당이나 개인, 냉전이 종식되어도 식을 줄 몰랐던 빨갱이로 몰아갈 세력이 없어지자 이제는 진보적 사고와 빨갱이를 등가물로 만들어 내는 언어의 마술사 같은 극우 보수 잔당이나 그 추종자들, 그리고 그것을 보면서 즐겁지만 표현을 못하고 뒤돌아 서서 웃고 있는 썩은 정신을 가진 파당이나 그 떨거지들로부터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자유롭다기 보다는 근처에 다가서는 것조차 싫다.  그러니 손석희 씨의 그 말은 정말일 수 있다.  그러나 정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있으나 사상으로 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사상이 반드시 ISM이 될 필요가 없다.  개선과 상승이 그의 사상이 될 수도 있고, 다 살이 살판이 그의 사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며, 정당한 부의 재분배, 절대다수의 절대 행복이나 절대다수의 상대적 행복이 그의 사상이 될 수 있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면 되는 것이다. 

 

행간의 의미를 찾지 말아달라는 그의 말은 언로의 통제가 없지 않은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부탁과 당부를 해도 찾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아야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되었든 손석희씨는 100분 토론을 접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기업체에서 할 수 있는 방송의 재편과정에서 더 적합한 인재를 찾았다면 New Blood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정신을 보이는 것도 그리고 그런 사람을 선임하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시기적으로 언로가 통제되는 시점에 그래도 바른소리 쓴소리를 그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결합되면서 인사의 문제가 더욱 정치적 음모로 증폭된 부분도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손석희씨는 100분 토론의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국민들이 판단력에 달려있다.  만약 현재의 사태들이 언로 통제의 일환으로 어중간한 사람으로 대체되었을 때도 시청률이 줄지 않는다면, 국민의 의식 수준이나 국민의 떨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아니면 오히려 시청률을 높이되 참여의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살아있는 국민이 많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담당하고 복의를 품은 발표를 할 수 있는 손석희씨는 분명히 진중권과 같이 나 정치적 희생자야를 외치는 경우보다는 한 수 위가 아닌 1001000수 상위에 앉아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오히려 그의 이런 발언으로 다시 한번 그 의미를 되새김질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미네르바에서 시작된 언로 통제의 비수는 지속적으로 날을 세우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수 속에서 너무나 많은 회전의자 속의 과격주의자들을 양산하였다.  회전의자 속의 과격주의자는 생각만으로 진보일 뿐 행동에서는 더욱 더 멀어져 입만 나불 되고 급기야는 듣보잡 같은 인간군이고 그런 군상들이 너무나 많이 양산되었다는 것도 가슴 아픈  현실이다.

손석희씨 발표전문이 숨긴글 속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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