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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24. 09:30 리뷰/영화 리뷰
영화 도그빌은 독특한 소재로 연극의 기법을 영화에 적용한 영화와 연극의 중간에 위치한 영화이다.  무성영화 시대의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되는 도그빌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이다.  3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으로 조금은 부담이 되는 영화이며, 중복적인 사족이 제거되어도 영화를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여서 편집을 좀 더 과감하게 하였으면 하는 기대도 있는 작품이다.  내용 상으로 보면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을 새롭게 재조명하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에서 인간성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여기서는 스토리라인을 이야기하는 것 보다는 플롯의 상징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한다.

잉여 노동의 잠재 가치
도그빌은 중심지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이다.  마을의 구성원 중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은 에디슨 주니어이다.  커뮤니티의 도덕 선생을 자처하는 우유부단한 작가지망생인 에디슨 주니어가 한밤의 총성을 듣고 발견한 아름다운 그레이스를 만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총성과 아름다운 여인, 갱스터의 추적은 다양한 상황해석을 하게끔한다.  그레이스라는 여인의 존재가 범죄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이러한 암시에 대한 마을 주민들의 불안감이 지배적인 마을 회의에서 "타인의 수용"이라는 미덕을 이야기하는 에디슨 주니어의 설득에 잠정적으로 동의한 마을 주민들은 그레이스에게 2주간의 말미를 주기로 결정한다.  2주간 자신의 결백함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환심을 얻어내어 마을에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어하는 그레이스에게 에디슨 주니어는 육체노동이라는 제안을 하게 되고 마을 주민들의 일을 돕는 일을 자처하게 된다.  그러나 마을 주민에게 있어 그레이스의 노동력은 잉여 노동력으로 간주되고 그 잉여노동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상업이 중심이 되는 가게의 스트로베리 정원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하고, 일정정도의 생계를 위한 보수를 받는 조건까지 갖춘 일종의 고용계약과도 같은 잉여노동의 제공이 이루어진다.  보수를 받든 받지 않든 꼭 필요하지는 않으나 하면 변화를 줄 수 있는 노동을 대신하겠다는 조건으로 조금씩 영역을 확대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생산성 향상을 만들어 내는 잉여 노동력의 투여를 그레이스가 담당하게 된다.  이미 잠재가치는 충분히 마을 주민에게 수용이 된다.  잉여 노동력의 투여에 따른 잠재가치의 인식이라는 부분 이외에 개인적인 불안감과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대체물이라는 2가지의 목적을 위해 그레이스는 필요한 존재로 인식이 된다.  필요에 대한 직접적인 원인은 남성들의 음탕한 눈길과 교육열로 명명되고 있다.  이것은 향후에 따르게 될 이야기의 복선으로 성폭행 혹은 강간 나아가서는 댓가성 섹스라는 매춘까지도 연상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고 있으며, 향학열 즉 이성으로 포장된 잔혹성과 불합리한 감정이라는 요소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면서 자유와 허영이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가치에 대한 감사와 약점으로 인해 증폭되는 기대수준과 착취
한국 속담에 "말타면 견마잡히고 싶다"라는 말이 있다.  편해지면 더 편하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그레이스의 노동력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의미에 대한 개인적인 감사의 순간이 도래하는 것으로 끝이나는 해피엔딩의 동화가 아니다.
  또 하나의 위기를 만들어 내는 요소가 있다.  외부로 부터 도그빌이라는 폐쇄된 공간에 주어지는 위기는 공권력이 가지고 있는 위협이라는 요소와 결부되어 있지만 그러한 공권력은 현상 속에 뭍혀 미미한 존재로 보이는 점 또한 상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공권력이 제공하는 정보는 다름아닌 실종에서 은행강도라는 허위정보와 연계되어있다.  감사하는 마음은 보상금으로 인해 주민들이 흔들리게 되는 요인으로 작용을 하고 공권력의 처벌을 자신들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레이스는 심증에 의한 현장범으로 간주되면서 협박의 대상이 된다.  마을 주민들은 암묵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거나 유희의 도구로써 잉여노동의 공급자인 그레이스를 대하고, 동등한 인간이 아니라 존경과 비굴함을 요구하는 공범으로 결속된다.  진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실은 항상 자신들의 편에 있다는 근거없는 편견과 아집으로 비열하고 잔혹한 인간성에 대한 무시와 말살이 정당화된다.  집단적인 착취와 적개심, 그리고 타락의 화신에 대한 사형(개인적인 형의 집행)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집단광기 속에서 안도감을 공유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모두 사욕을 채우는 일에 몰두하는 인간의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면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요구하는 주민들은 시간을 쪼개서 자신들의 집에 더 자주 보이기를 원한다는 조건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감시와 검열의 강화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레이스라는 인격체는 감사의 대상이 아니라 감시와 착취의 대상 그리고 사욕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전락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포와 위협의 요소와 수단을 감지하고 있는 사악한 아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은 아이의 변태적인 욕구를 재생산하여 성인 사회의 그릇된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는 괴기적인 모습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섬뜩하리만큼 생생하게 보여준다.

지식인의 배신과 비주류의 착취 동참으로 일단락된 착취
에디슨 주니어는 항상 생각을 하기 위해서 생각을 하면서 그레이스를 해방시키기 위해 단 한번 계획을 실천한다.  그러나 계획이 중도에 탄로가 마자마자 그 책임을 바로 그레이스에게 돌려버린다.  회전의자속의 과격주의자가 허위의식에 빠져서 자신을 투사라고 이야기하다가도 자신의 이익이 사라질 위험에 빠졌을 때 보여주는 비참할 정도로 비열하고 저열한 자기방어와 자기미화를 보여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천을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생각만 많은 지식인들은 가치가 없다.  기조가 없이 흔들리는 생각으로 간에 붙었다 쓸개에 가붙었다하는 불안한 사고는 피해망상증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내가 얼마나 노력을 많이 했는데 나를 모르느냐는 식으로 조증과 울증 사이를 오가면서 대척점 사이를 널뛰는 인간이 되기 쉽다.  공창으로 전락한 그레이스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위한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말에 몇번이고 좌절되는 욕망과 자신의 실패한 계획에 대한 비밀을 감추기 위해 마을의 이익이라는 논리로 자신을 무장하고 최후의 일격인 인신매매를 결정하는 것이 도덕적 지식인의 가장 완벽한 실천이었고, 가장 비열하고 궁색한 변명으로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 마지막 모습이다*.  현재의 한국에서 보여지는 모습과도 다를 바 없는 현상이 무미건조하게 여기서는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지식인의 대척점에 서 있는 마을의 가장 소외되고 가장 가난하게 살고 있는 비주류의 트럭 운전사도 마지막으로 착취에 동참함으로써 한 인격체에 대한 착취는 완결된다.  레닌이 혁명의 마지막은 신인류의 탄생이라고 굳게 믿었으나 신인류의 탄생이라는 신화가 구현되지 않음을 보고 뇌일혈을 일으켰듯이 피착취자의 착취를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인내는 오만이고 오만은 복수를 낳는다.
이스라엘 신화와 역사책인 성경에 "실수는 인지상정이요, 용서는 신의 섭리"라는 말이 있다.  인내와 용서는 신의 영역이고 인내는 복수를 위한 인고의 세월이라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마지막이 기다리고 있다.  권력을 나누어 준다면 지금 당장 그 권력을 나누어주고 그 권세로 인격을 말살하는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실행을 한다.  그것도 그들이 한듯이 그대로 갚아준다.  이 부분으로 인해 종교적인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레이스가 가장 기쁘면서도 슬프게 생명을 살려주는 것은 다름아닌 개이다.  Dog Vill.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무엇이냐 누구나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아 수많은 이견 중 기다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O! Dog라는 말이 생각나게 하면서 인면수심,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하는듯한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엔딩
도그빌이라는 영화는 비록 니콜 키드먼의 깍아지른 듯한 인형같은 얼굴과 인형에서 보여지듯 작은 코로 인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던 여배우의 모습이 이 영화포스터에서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독특한 구조로 제작된 저예산 영화이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영화라는 평으로 인해 큰 마음먹고 보았던 영화이다.  이 영화의 지루할 정도로 긴 러닝타임과 사족처럼 반복되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잔혹하고 참담할 정도로 비열해 질 수 있는 인간의 모습과 자본주의 사회의 왜곡된 현상 그리고 집단적 폭력의 극한에 대한 묘사를 냉정하리만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다면 다시 한번 마음을 잡고 찬찬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는 영화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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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프루프라는 영화에서 여성 살해자 커트러셀이 여자들에게 흠씬 당하면서 "쏘리"를 외치던 표정과 바로 시야에서 사라지자 비열한 웃음을 짓던 모습을 연상시킨 장면.  커트러셀의 연기에 입이 떡 벌어졌었다.  쿠엔틴 타란티노다운 영화를 좋아한다면 OK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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