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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 24. 07:38 리뷰/영화 리뷰

메트릭스 영화읽기 : 메트릭스 발표 10주년 기념(1999년 워쇼스키 형제) 

메트릭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불교, 도교, 그리스도교를 인용해 가면서 다양한 해석들을 했으며, 그러한 해석이 100% 공감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부 무시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다. 해석이 난무하게끔 영화를 만든 워쇼스키 형제의 각본과 제작이 뛰어났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매트릭스의 서언 : 시뮬라시옹

 영화의 시작과 함께 프로그램 트레이싱이 시작되면서 도청이 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경찰들이 방을 기습하는 것으로 시작을 한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여주인공의 격투기술과 대로를 가로질러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는 모습을 보았을 때, 뛰따라 오던 경찰이 "That's impossible"이라고 하듯이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전화와 함께 사라져 버린 여주인공 트리니티. 20분까지의 영화는 서기 2500년쯤 된 한 시기의 사이보그에 관련된 영화이려니 생각하게 된다. 마치 SF영화의 백과사전인 "블레이드러너"의 Upgrade버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는 아주 평범한 방이 나오면서 시간적인 기준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영화의 진행을 알려주는 단서는 바로 그 방에서 시작된다. 2천불에 판매되는 "프로그램화된 마약"을 판매하면서 "Wake or still Dreaming"에 의구심을 표현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마약"을 꺼내든 책과 깊은 연관이 있다. 장보들리야르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의 의미를 반영하는 표현이다. 시뮬라르크란 존재하지 않는 것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놓은 가상의 인공물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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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이 인공물이 다름아닌 Matrix이다. 공교롭게도 이 매트릭스의 성격도 다름아닌 보들리야르의 책 속에서 물건을 꺼내든 Chapter,는 Nihilism이라는 3장이다. 국내에서 번역된 책에서는 제일 마지막 장으로 되어 있는 니힐리즘에서 저자는 투명성의 니힐리즘, 체계의 투명성, 체계를 분석한 이론의 투명성으로 인해 니힐리즘이 갖고 있는 저항과 파괴의 성격이 해소되어 버린다고 주장한다. 메트릭스라는 체계는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이에게는 너무나도 명약관화하고 투명한 진실이기에 그것에 대한 저항과 파괴는 더 이상의 가치도 의미도 없다는 것이다(이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이 갖고 있는 회의의 한계이며, 이론적 한계이기도 하다. 그것은 학자들의 Insight의 부족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헤겔이 말했듯이 현상을 설명하는 것은 모두가 알게 된 현실일 때 가능해 진다. 그러나 이전에는 대안을 위한 연구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현상설명을 위한 현상설명으로 한계를 가지는 학문 분야가 푸코를 비롯한 프랑스의 포스트 모더니즘이디).그러나 그 시스템에 대항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체계의 보호본능이 작동을 한다.

 상징의 언어 : 언어의 유희

 꿈과 현실의 무분별에서 깨어나도록 해 주는 모피어스와의 만남 또한 재미있는 언어의 유희를 워쇼스키 형제는 잊지 않는다. 왜냐하면 Morpheus는 꿈의 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꿈에서 깨어나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다름아닌 모피어스의 역할이다. 쿵후대련을 하는 장면에서 이 역할을 명백히 한다. 문 앞까지 데리고 가는 것이 그의 역할이고, 그 문을 지나가는 것은 다름아닌 The One인 Neo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Free your mind"가 다름아닌 모피어스의 역할인 것이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하는 것이 사람들의 이름과 함선의 이름, 그리고 그들이 말한 내용이 꼬리를 물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사물이 가지는 상징성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Follow the White Rabbit"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즉 매트릭스에서 빠져 나오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고, 토끼의 속성이 호기심과 성욕이라는 이미지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매트릭스를 떠나기로 결정한 순간 매트릭스를 빠져 나오는 매개가 되는 것은 거울이다. 깨진 거울이 완전해 지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수은으로 변한 거울 또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거울은 전도된 현실을 원래의 상태로 복귀시키는 관문으로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거울이 깨져 있다는 것은 다름아닌 왜곡된 현실에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거울이 완벽해 지는 것은 완벽한 복귀를 위한 단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게다가 거울에 사용되는 수은은 연금술사의 금속이다. 연금술사의 금속이란 다름아닌 금으로 바꾸기 위한 기초 재료인 것이다. 이러한 상징성을 이중 삼중으로 그려놓은 점에서 워쇼스키 형제의 각본 자체의 의미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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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상징성을 설명하는 부분이 이 영화의 전반부를 차지하며, 영화의 전반부는 영화의 후반부의 매트릭스에 대한 저항과 지속적으로 연계되고 있다.

 이미 모피어스는 언급을 했지만, 다른 이름들도 이 영화에서는 모두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트리니티는 3위 일체를 의미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며, 성부/성자/성령의 3위 일체이니 이 영화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더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좀 더 보면 Neo는 모두가 아는 New의 의미이다. 다시말해 Neo는 New Order를 만들어 내는 중심인물이며, 트리니티의 3위 일체는 인도자 모피어스, 리더로 성장한는 니오,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3가지를 의미하며, 여주인공인 트리니티는 이 3자의 완성을 이루어 주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트리니티는 마리아와 같은 존재이면서, 그녀 없이는 신질서의 완성이 이루어 질 수 없게 만드는 핵심 매개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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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이 타고 다니는 함선의 이름은Nebuchadnezzar, 다름아닌 바빌론의 부흥기를 이끌어낸 바빌론의 왕이며, 당시에 바빌론에 바벨탑을 세운 인물이다. 신의 지배에 대향하는 인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가 안드로귀노스를 안드로와 귀노스로 분리시켜 복종의 인간을 만들어 내고 체계에 복종적인 인류를 만들어 내지만 네부카드네짜르는 기존의 신 중심의 체계에 대항하여 새로운 인류의 질서를 만들어 내려고 한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각본을 쓴 워쇼스키 형제는 신질서를 창조해 가는 인물들을 묘사하고 그들이 달성해야 할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포스트 모더니즘을 초월하게 된다. 신질서의 중핵에 선 Neo는 파괴의 근원이기도 하며, 에이전스 스미스를 파괴하는 본능을 보여주는 점에서 보드리야르의 현대의 니힐리즘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유심론과 유물론의 중간 선택

 매트릭스의 또 다른 매력의 하나는 유심론과 유물론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차원적 인간을 쓴 마르쿠제가 소속된 프랑크 프르트학파의 대부분은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에서 New Left운동이 있었던 60년대의 지식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를 지배하는 요소가 물질과 관련된 토대가 중심인 시기와 토대의 기득권이 정신적인 요소를 강조하고, 시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 사상의 분야에서의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시기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비판이 필요한 시기라고 한다. 구조와 체계를 가지고 있는 국가사회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고 개인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영화에서 사용한 정확한 문장은 "Body can not live without mind"이다. 워쇼스키 형제는 아마도 바로 그런 점에서 헤겔적인 변증법에서 정반합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시점에서 있어 Spirit과 Mind 중심으로의 이동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도교적인 모습이 보여진다는 일설과도 맥락을 같이 하지만 이 부분은 가상과 현실의 교차와 중첩이 이루어지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청년 헤겔에서 이론적 근거를 밝혀 내려고 했던 프랑크 푸르트 학파가 주도한 시대의 영향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으로 여겨진다.

 포스트 모너니즘으로의 퇴행? 혹은 후편을 위한 여백?

 투사로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장면은 마지막에 연출되어 진다. 스미스 요원에게서 총알세례를 받은 Neo. 그를 일어나게 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미지의 요인이다. 비틀즈의 노래처럼 "All you need is Love"인지 Love can change anything인지 혹은 현실과 가상 세계의 또 다른 혼재를 암시하는 것인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그러나 가상의 현실이 다시 현실을 지배하는 다가 올 상황에 대해 미리 암시를 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일 것이라는 입장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또 다른 형태의 포스트 모더니즘으로의 퇴행을 의미한다. 이것이 2편이나 3편으로 이어지는 내용과 연관 지을 때는 적절하지만 이것은 2편 3편의 상징성이나 의미가 많이 퇴행하는 점이기도 하다. 물론 재미가 덜해 지지는 않았으나, 대항과 저항을 통한 새로운 질서의 탄생이라는 요소만으로 자신들의 생각에 변화를 주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힘이 딸리게 되었다는 것만은 언급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스미스 요원에 대한 파괴도 사실은 후속편을 위한 단서이기도 하다. 스미스는 인간을 바이러스에 비교하면서 매트릭스를 떠나고 싶어하고 그것을 실현 시켜 준 것은 다름 아닌 Neo이다 이런 점에서 Neo와의 관계는 향후에도 이어질 요소임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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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담으로 명장면으로 꼽을 수 있는 장면들이 이 영화에는 많다. 이후 패러디의 요소로 슈렉이나 소림축구 등에서도 패러디된 이 영화도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을 보는 것 같은 장면을 보게 된다. 미국식 갱을 홍콩에서 표현한 홍콩 느와르가 배어 있으면서 동양적인 Marshal Art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점이 재미있는 측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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